혈액투석 환자에게 단백질-에너지 영양불량(Protein-Energy Wasting, PEW)은 매우 흔한 문제이며, 생존율과 직결된 핵심적인 이슈입니다. 단순히 '마른 몸'이 아니라, 체내 단백질과 에너지 저장고가 고갈된 상태로, 근육량 감소, 면역력 저하, 상처 회복 지연, 감염률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령 환자나 식사 섭취량이 적은 환자들은 충분한 단백질과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해 쉽게 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단백질을 '더 먹어보세요'라는 조언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식욕 저하, 씹기나 삼킴 곤란, 음식 기호의 제한 등 다양한 현실적 장애물이 존재하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조언은 오히려 식사 거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PEW 예방을 위해서는 고단백 식사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환자의 식사 행동과 신체 상태에 맞춘 보충 전략이 필요합니다.
본 글에서는 실제 임상 사례를 통해, 투석 환자에서 흔히 발생하는 영양불량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단백질은 필수입니다: 고단백 식사의 원칙과 적용 현실
혈액투석은 체내의 노폐물뿐 아니라 일정량의 아미노산과 단백질을 함께 제거하기 때문에, 단백질 요구량이 일반 성인보다 1.2~1.5배 이상 높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환자들은 '콩은 안 되고, 고기도 조심해야 한다'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단백질 섭취를 기피하거나, 식욕 저하로 인해 식사량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외래에서 만난 78세의 여성 투석 환자는 "고기만 먹으면 체기가 있고 더구나 챙겨 먹는 것도 힘들다."며 점점 밥과 국만 먹는 식사로 간소화되었습니다. 결국 체중은 4개월 사이 3kg 가까이 감소하였으며, 혈청 알부민 수치도 3.2g/dL로 저하되었습니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서는 반드시 동물성 단백질을 포함해야 하며, 조리 방법과 질감을 고려한 맞춤식 제안이 필요합니다. 부드럽게 찐 달걀, 냄비에서 푹 삶은 닭고기나 돼지고기반찬, 다짐육이나 얇게 썬 고기활용 등이 효과적입니다. 여기에 기호성 높은 국물이나 향신료, 소스를 적절히 곁들이면 식사량 증가에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단백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실제로 먹을 수 있도록 식사의 형태를 조정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영양사와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병원 식단 외의 가정식 조리법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이 병행될 때, 식사 지속률도 높아집니다.
먹을 수 있어야 보충된다: MCT와 농축단백질의 전략적 활용
식사량이 부족하거나, 씹기나 삼킴 기능이 저하된 고령 투석 환자에게는 기존의 식사만으로 단백질과 에너지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보충식의 전략적 사용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쇄지방산(MCT)은 흡수가 빠르고 소화 부담이 적어, 에너지 공급원으로 매우 유용하며, 농축단백질은 적은 부피로도 높은 단백질을 제공해 식사량 제한이 있는 환자에게 적합합니다.
실제로 82세 남성 환자의 경우, 반찬들을 씹기도 힘들어하시고 식사 중 졸음과 포만감을 호소하며 하루 섭취량이 매우 적었습니다. 그런 식습관을 하다 보니 당연시하게도 체중과 알부민 수치가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이후 상담을 통해 아침에 MCT 오일을 소량 넣은 죽, 오후 간식으로 농축 단백질이 포함된 푸딩을 섭취하도록 권장했습니다. 6주간 시행해 보니 체중 감소가 멈추고 알부민 수치도 3.5g/dL까지 회복된 사례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보충식도 환자 상태에 맞게 조절되어야 하며, 특히 인, 칼륨, 나트륨 등의 함량 확인이 필수적입니다. 시중 제품 중에는 맛이 강하거나 농축도가 높은 경우도 있어, 실제 섭취 가능성을 평가한 후 선택해야 합니다.
환자에게 잘 맞는 보충 방식을 찾는 것이 단백질-에너지 영양불량 예방의 핵심이며, 단순히 제품을 권유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 간호사나 보호자와 협력하여 복용 타이밍과 형태를 조절하는 것도 효과적인 실천 전략입니다.
근육량 유지가 생존력입니다: 투석 환자의 근감소증 예방 전략
단백질 에너지 영양불량(PEW)의 결과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는 바로 근감소증입니다. 단순히 마른 체형을 넘어, 실제 근육 기능이 저하되며 일상생활 능력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70대 투석 남성 환자의 경우, "예전에는 병원까지 걸어왔는데, 요즘은 버스 정류장까지도 힘들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환자의 SGA 평가 점수는 C로 악화되어 있었고, 악력도 16kg로 근감소 기준 이하였습니다. 여기서 SGA평가란 투석 환자의 영양 상태를 평가하는 표준적인 도구 중 하나입니다. 주로 임상영양사나 의사가 사용하는데, C로 평가받았다는 것은 중증 영양불량이라는 뜻입니다. 체중이 현저히 감소하고, 식사량 저하가 뚜렷하며, 근육 및 지방 감소가 분명하게 관찰된다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근육량은 6개월 새 5kg 이상 줄었으며, 이로 인해 낙상 위험이 증가하고 감염 회복력도 떨어졌습니다.
근감소증은 단백질 섭취만으로는 예방이 어렵고, 반드시 활동량 유지와 병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고령 환자의 경우 걷기 운동이나 일상적 움직임조차 감소하기 쉽습니다. 주변의 재활치료사나 간호사와 협력하여 침상 내 운동, 식후 가벼운 이동 등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식사 후 흡수율이 높은 상태에서 보충제를 섭취하거나, 아침 식사에 단백질을 집중 배치하는 것도 실질적인 근육 유지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의료진이 정기적으로 신체계측과 근력 평가를 병행해야 하며, 단백질 에너지 영양불량을 단순한 체중 감소가 아닌, '기능 저하'로 연결되는 문제로 인식해야 대응이 가능합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지속성입니다: PEW 예방의 생활 밀착 전략
환자에게 단백질 섭취와 보충제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만, 이를 실제로 '매일 실천하게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고령 환자는 '보충제 맛이 너무 느끼해서', '식사 시간이 지루해서' 등 개인적인 이유로 식사 지속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 76세 남성 환자는 병원에서는 보충제를 잘 먹지만, 퇴원 후에는 "아들이 사다 준 건 너무 달고 끈적하게 느껴져서 못 먹겠다"며 섭취를 중단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보충제를 물에 타서 묽게 마시거나, 국에 살짝 섞어 기호성을 높이는 등 맞춤형 조절이 필요합니다. 또, 보호자 교육을 통해 '억지로 먹이기'보다는, 식사 시간 자체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만들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도 중요합니다.
식사는 치료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먹는 행위에 대한 환자의 태도와 감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관리가 어렵습니다. PEW 예방은 단발성 영양 상담이 아닌, 생활과 밀착된 모니터링과 유연한 전략이 병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숫자(알부민이나 체중 등) 그 자체보다 환자가 '매일 조금씩이라도 먹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결국 꾸준함이 생존율과 직결됩니다.
결국은 먹는 힘입니다
단백질 에너지 영양불량(PEW)은 투석 환자에게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조기에 발견하고 일상 속에서 실천 가능한 전략을 수립하면 충분히 예방 가능하며, 삶의 질은 물론 생존율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고단백 식사의 원칙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환자의 기호와 생활 패턴에 맞춘 섭취 방법을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PEW 예방은 일상 속의 실천입니다. 단백질 보충뿐만 아니라 근육량 유지, 식사 분위기 조성, 보호자와의 협력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체중 수치나 혈중 알부민 농도보다, '오늘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결국 PEW 예방은 특별한 기술이 아닌, 일상 속의 세심한 관찰과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임상영양사는 그 연결고리를 설계하는 조율자이자 안내자여야 하며, 환자 개개인의 '먹는 힘'을 복원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가 됩니다.